12월 미바회 월례미사 (2020.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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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대구미바회04 조회 조회수 844회 작성일2020-12-22 22:43본문
2020년 12월 19일 셋째 주 토요일, 성모당에서 미바회원들을 위한 미사가 집전되었습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부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많은 분들께서 미사에 참석해주셨습니다.
낡았던 미바회 홍보배너를 새로 제작해서 후원해주신 회원님 덕분에 바꿀 수 있었고,
오랫동안 돼지저금통에 모은 동전을 후원해주신 회원님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올 한 해도 많은 분들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과 기도 덕분에 해외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여러 선교사들에게 필요한 차량을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또 대구 미바회 소식지인 [아름다운 발] 제 2호를 발간하여 미바회원분들께 나눠드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든 가운데에서도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고 후원해주신 미바회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미바회원들 모두의 가정에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끝으로 많은 분들의 요청이 있어 금일 송영민 신부님께서 하신 미사 강론글을 남겨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나해 대림 3주간 화요일/ 2020.12.19 / 루카 1,5-25/ 미바회>
“All Shall Be Well”
1.
저는 미국에서 3년, 캐나다에서 6년 동안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다시 학생으로 살던 그 시간, 12월 이맘때는 늘 학기말 숙제를 하면서 우울하고 힘들게 지내곤 했습니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진도는 나가지 않고.. 언어의 한계를 실감하며 과연 내가 공부를 마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니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지고 웃음도 잃어버리게 되더군요.
그렇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책에서 본 짧은 말 한마디가 저에게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영국 노르위치의 성녀 줄리안의 말씀인데, 참 단순합니다. “All shall be well, all shall be well, and all manner of thing shall be well.” (“다 잘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입니다.”) 한번 따라해볼까요? “All shall be well.”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이 메시지는 사실 줄리안 성녀가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에 했던 말이 아니라,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기에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올 한해 우리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줄리안 성녀가 살았던 당시 유럽은 지금보다 더 심각한 ‘흑사병(페스트)’이라는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때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희망이 없었던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줄리안 성녀 자신도 큰 병으로 고통을 겪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슬픔과 절망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도, 줄리안은 하느님의 선하신 의지를 철저히 신뢰합니다. 하느님 따뜻한 사랑 안에 자신의 영적 뿌리를 두고, 희망의 끊을 놓지 않고 두려움을 넘어 삶을 긍정합니다. “All shall be well, all shall be well” 그렇게 기도합니다.
어쩌면 크게 특별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말일 수도 있지만, 줄리안 성녀의 이 단순한 말 한마디가 저에게는 힘든 시기 저를 지켜준 희망의 기도였습니다. 오랜 외국 생활 속에서 사람들로부터 잊혀진듯한 외로움,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일 앞에서 느꼈던 불안함, 실패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그렇게 마음이 무겁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 “All shall be well” 그 한마디의 기도는, 제가 하느님의 은총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제게 주어진 쉽지 않은 그 상황을 긍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2.
물론, 늘 그렇게 긍정의 기도를 하기가 쉽지 않음을 저도 압니다. 현실의 어려움 앞에 서면 누구나 불안한 마음이 들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마주하면 두려움이 앞서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고 믿기가 그리 쉽지는 않지요.
오늘 복음이 전하는 즈카르야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아이를 이젠 가지게 될거라고 주님의 천사가 알려주지만, 즈카르야는 그 메시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신의 아내 엘리사벳은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자신도 아내도 나이가 많다고,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냐고 합니다. 즈카르야는 의로운 사제였고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갇혀 두려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때가 되면 이루어질 하느님의 일에 신뢰를 두지 못합니다.
즈카르야의 이러한 모습은 어제 복음의 요셉과 내일 주일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모습과 대조적입니다. 요셉이나 마리아나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자신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잉태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은 마리아, 그런 아내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명령을 들은 요셉.. 그들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주어진 그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두려움, 불안함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믿음을 둡니다.
인류의 구세주는 그렇게 두려움을 넘어 그 현실을 긍정하는 자리에 오십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잘못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넘어, 단순한 믿음으로 그분께 맡기고 받아들이는 그 자리에 오십니다. 아무 걱정 없이 만사형통한 자리가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을 넘어 그래도 “All shall be well” 할 수 있는 – 그렇게 느긋한 믿음으로 기다리는 그 자리에 주님께서는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3.
그러한 사실을 저는 여러분을 통해 배우곤 합니다. 3년전 이맘때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솔직히 이런 저런 두려움이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께서 저를 바라보시는 그 따뜻한 신뢰의 눈빛은 제가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신앙 생활에 충실하려는 여러분의 모습은 받아들임의 은총, 믿음의 은총을 제게 깨우쳐주셨습니다. 무슨 심오한 신학적 지식이나 분석보다, 이곳 성모당에서 여러분이 보여주신 하느님에 대한 그 단순한 믿음이 제겐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 저를 그렇게 일깨워주셨듯이, 여러분도 그렇게 여러분의 그 따뜻한 믿음으로 각자 삶의 자리에 하느님의 은총이 임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때론 경제적 어려움이, 때론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통이, 때론 가족 문제가, 때론 좋지 못한 건강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이 이미 갖고 계신 하느님을 향한 그 좋은 믿음으로 “All shall be well” 기도하며, 그렇게 때가 되면 하느님께서 결국엔 나를 통해 더 좋은 것을 이루신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4.
힘들 때마다 거리의 겨울나무를 생각해봅시다. 벌거벗은 몸으로 추운 겨울을 나야하지만, 너무나 긴 시간 외로운 시간이지만, 겨울나무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제 자리를 지키며 자기 안에 푸르름의 씨앗을 간직하며 삽니다. ‘과연 봄날은 올까?’ ‘이젠 너무 늦지 않았을까?’ ‘과연 가능은 할까?’ 그런 두려움보다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창조주에 대한 철저한 신뢰로, 여덟글자로 된 희망의 그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내이며, 겨울나무는 천천히, 서서히, 푸른 잎이 되고.. 마침내 꽃피는 나무가 됩니다. 하느님은 믿음의 그 겨울나무를 그렇게 다시 푸르게 일으켜주십니다.
겨울이 깊어갑니다.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지가 모레입니다. 차가운 바람이, 긴 어둠이 우리를 지치게 할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믿음 속에 그분은 다시 빛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2000년전 아이없던 여자라 서러웠던 엘리사벳의 청을 들어주셨듯이, 올 한해 힘겨운 삶의 여정 남몰래 흘린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며 우리에게 다시 희망을 선물하십니다.
그래서 우린 다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All shall be well.” 아멘.